철도로 대륙 연결하는 일본, 한국은 섬나라?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붙어 있는 한반도는 그 위치만큼이나 많은 역사적 소용돌이를 헤쳐 나와야 했다. 가까이 붙어 있는 중국, 러시아,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의 경찰로 불리는 미국의 자기장들이 한반도에서 충돌하고 있다. 지독한 지정학적 딜레마를 안고 살아야 하는 한국에 필요한 것은 소통과 협력을 통한 평화의 공존이다. 때문에 더 많은 지혜와 인내심,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필요하다.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려 전쟁을 치르고 이후 계속된 냉전의 유산으로 막 진동하기 시작한 활성단층위의 허술한 구조물처럼 서 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과거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상쇄하고 평화와 공존을 위한 튼튼한 지반을 만드는 기초 공사다. 이 기초 공사에 쓰일 재료로 남북의 상호이해와 소통을 이끌어줄 철도만 한 것이 없다.
무릇 잠그고 벽을 쌓는 세력은 갇힌 물처럼 썩을 수밖에 없다. 벽을 부서야 벽 너머의 상대를 알 수 있고 알아야 이해하고 힘을 모을 수 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표면적 현상은 정의로운 우리에 대항하는 타자에 대한 부정이다. 서로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대립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 결국 전쟁으로 돌진하게 된다.

▲ 시베리아를 달리는 대륙횡단 열차. ⓒ박흥수

지금 한반도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한때 남북 철도를 통한 대륙 철도로의 연결이 가시화됐던 적이 있다. 철도 연결을 위해서 군사분계선의 철책이 뚫리고 주변의 지뢰들이 제거됐다. 남쪽으로 총구를 향하고 있던 북한의 최전방 부대들이 이전됐다. 평화 협력이 그 어떤 군사작전보다도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과 러시아도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이 탄력을 받자 한반도에서 연결되는 유라시아 철도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이미 러시아는 1991년 10월 한-러 철도 협력 의정서를 체결할 때부터 시베리아 철도와 남북 철도 연결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왔다. 또한 동유럽과 아시아 등 28개국이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제 철도 협력 기구인 OSJD(Organization for Cooperation of Railways)에 한국의 가입을 적극 찬성하기도 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운행을 위해서는 OSJD 가입이 필수적이다. OSJD는 정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신규 회원 가입을 승인하기 때문에 남한의 가입을 반대하고 있는 북한 설득이 필요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OSJD 가입을 위한 북한 설득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다.
남북 철도 연결 합의가 되자 한·러 철도 협력은 남과 북, 러시아의 3자 협력 관계로 발전했다. 2006년 3월 17일,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 구간인 블라디보스토크-보스토치니 구간에는 특별 열차 한 대가 운행됐다. 이 특별 열차 안에는 남과 북, 러시아의 철도 운영자가 타고 있었다.
러시아가 남북의 철도 책임자들을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부른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행위였다. 남북 철도 연결을 통해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철도가 실현되면 남과 북 러시아 모두가 평화와 협력의 실크로드를 복원하는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세계사적 사건이 되는 일이었다.
철도에서 러시아와 경쟁‧협력 관계인 중국도 중국 횡단 노선의 남북 철도 연결을 구상하며 남북·중의 다자간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남한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및 중국으로 향하는 국제 철도망을 연결하는 사업에는 여러 장애물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낙후한 북한의 철도 시설을 현대적으로 개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과 북의 상호 신뢰와 협력이 한 단계 더 높아져야 함은 물론, 상당한 비용도 필요하다. 러시아는 북한 철도 개량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을 제안했다. 높은 기술력을 가진 남한의 건설 회사들이 참여하고 러시아가 상당한 비용을 대는 이 방안은 주변 관련국들과의 협의를 통해 긍정적인 대안으로 채택될 수도 있었다.
국제철도 연결이 현실화되면 남한은 동북아 물류의 전진기지가 되는 것은 물론 인적 교류 활성화를 통한 문화와 예술의 융성 등 단순한 철도 노선 이상의 가치들을 얻을 수 있다. 사실상 섬으로 존재했기에 사람들의 정신세계조차 갇혀 있었던 물리적 한계가 붕괴하게 된다. 대륙적 상상력이 한반도에 꽃피우게 되는 것이다.
서울역은 국제역으로 거듭나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베이징과 하얼빈, 울란바토르,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베를린, 파리, 런던까지 이어지는 출발점이 된다. 또 이 철도 노선은 중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더 나아가 베트남과 태국, 인도까지 이어져 철에 의한 환상(環狀) 고리를 형성하는 네트워크로 발전할 수 있다. 열차를 타고 못 가는 곳이 없는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희망은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국가 시스템을 이전투구의 장으로 만든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이 러시아와 중국의 남북철도 연결 희망을 좌절시켰다. 창조 경제라는 환상의 애드벌룬이 속절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가운데 남과 북은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화약고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연결 사업의 새로운 대안이 제시됐다. 오는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양국의 경제 협력을 논의한다. 러시아 측은 시베리아 철도를 사할린과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사업을 요구했다. 본래 시베리아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은 일본 측의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대륙 진출의 꿈을 갖고 있던 일본은 이미 1930년대부터 한일 해저 터널을 구상하고 이후로도 그 가능성을 계속 타진해 왔다. 사할린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의 연결은 일본의 대륙 연결 구상을 실현하는 꿈의 프로젝트로 성큼 다가왔다.
러시아는 15년 전인 2001년에도 푸틴 대통령이 사할린 해저 터널을 통한 유럽-일본 철도 연결 사업을 입안하라고 장관들에게 촉구하는 등 지속적으로 시베리아 철도의 확장을 꾀해왔다. 러시아 측은 심혈을 기울였던 남북 철도 연결을 통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한반도 연결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대륙철도 연결사업의 파트너는 일본으로 귀결되는 형국이다.
한진 해운 사태로 부산항의 컨테이너 기지가 몰락하고 대륙으로 가는 철길이 봉쇄되는 현실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끔찍하다. 입만 열면 국운융성을 외쳤던 위정자들이 그동안 만든 한국의 실체는 무엇인가?
남북 철도 연결은 사드나 수 백발의 최첨단 공대지 미사일로는 이룰 수 없는 평화의 길이었다. 철 지난 냉전적 사고에 갇힌 채 정파적 이해관계와 이권에만 집착한 사람들이 키워온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면 숨이 막힌다. 대륙에 붙은 한반도는 영구적 섬으로 전락하고 섬이었던 일본은 대륙으로 연결되려 하고 있다. 오호통재라.